[에세이] 선물

특강 후기 | 황지은

지난여름 디자인캠프에서 우리 팀은 글자꼴을 만들었다. 글자꼴의 모양과 인상을 결정짓는 단어 네 개를 뽑아 그에 어울리는 글자꼴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약이 붙었다. 나는 ‘싱싱한’이라는 단어를 뽑았는데 처음엔 무척 당황스러웠다. ‘싱싱’과 ‘글자꼴’의 조합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제비뽑기를 다시 할 수도 있었지만, 글자꼴을 처음 만드는 입장에서 잘 만들고 싶다는 바람은 분수에 넘칠뿐더러, 디자인캠프에 참가한 목적도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 있었기 때문에, 아무튼 ‘싱싱한 글자꼴’을 상상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그런데 독특한 그 단어 덕분에, 어쩌다 내 주위를 지나가는 친구들에게 노트북 모니터를 들이밀며 “어때? 싱싱해 보여?”라고 묻고는, 저마다 다른 반응을 관찰하는 쏠쏠한 재미가 내게 ‘선물’처럼 주어졌다. 4박 5일의 디자인캠프가 끝나고 내게 남은 것은 마음이 맞는 몇몇 친구들과 ‘싱싱한 글자꼴’의 추억, 그리고 한 가지 물음, “삶을 어지럽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어떻게 삶을 이끄는가”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제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돌아보니 등불의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나를 일깨워주는, 제주에 사는 친구는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중국인을 보는 자신의 시선이 달라져 부끄럽다고 썼다. 옥상에 올라가 어두운 하늘의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보며, 자신의 부끄러움을 빗대어, 구멍에서 나오는 것이 빛이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어둠과 빛, 구멍과 빛. 친구의 글에서 나는 어떤 힌트를 얻은 것 같았다.


그리고 지난주 최봉영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마침내 알았다. 구멍이 궁금함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구멍이 있으면 들여다보고 싶듯이, ‘이것은 무엇일까’ ‘저것은 무엇일까’ 궁금해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는 것을. 제약과 등불 사이에, 어둠과 빛 사이에 ‘궁금함’이 있는 걸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입에 넣고 빠는 아기 때의 호기심을 잃어버리지 않고, 우리가 우리의 어두운 구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사는 일이 조금 순탄해질 것 같기도 하다. 자신에게 빛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어둠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무니까 말이다.


강의가 끝나고, ‘궁금함’은 ‘대화’와 더불어 나의 또 다른 탐구 주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디자인학교와 나에게 어떤 바람을 일으킨 최봉영 선생님은 종종 자신의 연구 결과를 ‘선물’에 비유했는데, 나는 그보다 성인이 되어서도 잃어버리지 않은, 오랜 시간 간직하고 있는 그의 ‘궁금함’에 감사하고 싶다.


출처: 디담 담화게시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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