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정연두 작가 개인전 <지금, 여기> 관람 후기

수업 후기 | 황지은

지난 3월, 현대미술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서둘러 택시에 올랐다.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디자인학교 선생이기도 한 정연두 작가가, 그의 개인전이 열린 페리지 갤러리에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와 친분이 있는 이지원 선생이 특별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갤러리에 도착해 그와 짧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전시장으로 이동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세 개의 스크린에서 그의 작품 <고전과 신작>이 상영 중이었다. 도쿄 키요스미 시라카와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노인과 아이들, 라쿠고가(만담가)가 등장해 전쟁과 세대 간 이야기를 다룬다. 세 인물은 따로따로 등장하는데 세 개의 화면이 비스듬하게 마주보고 있어 대화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작품 관람 후 갤러리 로비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그는 간단하게 작품을 설명하고 학생들 반응에 귀 기울였다. 한 학생이 작품 속에서 발견한 상징적인 이미지에 대해 작가의 의도를 묻자 “대단하다” “예리하다” 치켜세우면서도 의도보다 ‘우연’이라는 단어에 힘주어 대답했다. 그리고는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방직 공장에서 60년 일한 할머니를 취재하기 위해 직접 실과 바늘을 잡은 일화다. 대낮에 공원에서 자수 뜨는 청년을 상상해보자. 호기심 자극하는 풍경에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내 이야기꽃을 피웠다. 또 한 가지, 눈 내리는 풍경을 예로 들며 자신은 사진 찍기보다 그림 그리기를 선호한다고 했다. 터치 한 번이면 끝나는 사진과 달리 펜과 종이를 찾아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과정에 의미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제 막 현대미술 공부를 시작한 학생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도대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비슷한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한결같이 답을 주기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의미를 찾게 이끌며, 이러한 구조에서 작품이 완결된다고 강조했다. 그날 이후 현대미술 수업이 몇 차례 더 이어졌고, 학생들은 함께 뒤샹 전시도 보고 왔다. 현대미술이라는 단어가 제법 입에 붙었다. 학생들은 각자의 의미를 찾았을까.


오현지 학생과 구보명 학생은 비슷한 생각을 했다. 바로 ‘영화’와 ‘사회운동’ 그리고 ‘현대미술’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세 분야가 다루는 주제는 겹치는 부분이 많다. 정연두 작가의 같은 작품을 보고, 오현지 학생은 소통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떠올렸고, 구보명 학생은 “작가의 표현방식을 사회운동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리고 함께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갔다. ‘단절’과 ‘연결’이라는 상반된 키워드도 등장했다. 현재호 학생은 세 인물이 각자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인생을 보았다. 서로 관계도 없고 이해하려 하지 않지만, 즉 단절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이 닮았다.”라고 덧붙였다. 반대로 권정현 학생은 일본의 내면이라는 또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선입견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공감이란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윤경근 학생은 사회적 기업에서 일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다시 기회가 온다면 정연두 작가처럼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라고 의지를 다졌다.


작가의 말대로 학생들은 “5초 광고도 건너 뛰는 유튜브 시대에 대단한 일”을 했다. 등받이도 없고 딱딱한 자리에 앉아 43분 동안 보고 들었다. 그리고 각자의 의미를 찾았다. 생각해보니 그건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이지원 선생의 말에 따르면, 작가는 “매번 다르게 주어지는 상황에 몸을 던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작품으로 제시”한다. 그의 작품 <고전과 신작>은 그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찾은 의미일지도 모른다. 주의 깊게 보고 듣는 행위에서 비롯된 의미. 작품 속 인물들로부터 작가에게로, 작가로부터 학생들에게로. 의미가 의미를 낳았다. 작품 속에서 가장 처음 등장해 전쟁의 기억을 떠올리던 노인의 ‘고전’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정연두 작가와 학생들을 통해 ‘신작’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2019.7.18


출처: 디담 담화게시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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