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전관중 교수 특강 리뷰

특강 후기 | 현재호

19일 토요일 오후 디자인학교에서는 국민대 전관중 교수의 특강이 열렸다. 특강 제목이 Depth였다. Depth는 깊이, 심도, 폭 등 단순한 사전적 의미를 지녔지만 무궁무진하게 비유할 수 있는 단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는 ‘넓고 깊게’라는 형용사를 매일 같이 사용하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그는 특강 주제와 제목을 정하는 일에 며칠 골머리를 앓았다고 했는데, 나는 그가 디자인학교에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아주 적확한 단어를 찾아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전관중 교수를 디자인학교에 꼭 소개하고 싶었다던 박민지 학생은 디자인학교에 대한 어떤 문제의식을 그와 공유하고 있는 듯했고,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난 심지어 그의 목소리로 민지가 우리에게 직접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 받을 수 있었다. 민지가 예전에 내게 한 말이 다시 떠오른다. 3d 프로그램을 같이 스터디하면 어떻겠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그 제안에 왜 동참하지 않았을까. 나는 왜 그것들을 내 영역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했을까.


Depth 1.다름

그는 Depth를 세 가지 하위 카테고리로 나눠서 해당 사례들을 정리했다. 1. Typographic 2. Symbol 3. Package다. 세 단어는 시각디자인에서도 아주 친근한 단어들이다. 하지만 산업디자이너인 그는 이 단어들을 분명 시각디자인 교육 강세인 디자인학교를 의식하고 고른 것이다. 두 전공은 다른 영역으로 나뉘지만 쓰는 용어는 똑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표기만 같을 뿐 의미는 다르다. 디자인학교 학생들의 이 세 카테고리와 관련한 배경지식은 전관중 교수가 특강에서 다뤄낸 부분보다 훨씬 넓고 깊을 수 있으며 그 또한 'Depth'라고 부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Depth를 그렇게 사용한다. 그렇지만 이 특강의 주제는 Depth의 범용성이 아니다. Depth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이용 가능하지만 이번 특강의 주제는 기본적으로 산업디자인에서 바라보는 Depth다. 시각 디자인 분야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앞의 세 카테고리를 그러한 관점으로 바라보았더니 그곳에도 전부 Depth가 존재하더라는 말이다. Depth는 기본적으로 은유인데, 이 특강은 구조를 바라보는 관점을 Depth로 은유한 것이다. 두 전공은 구조를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고 관점이 다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경험이 다르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두 전공의 디자이너에게 각각 ‘구조가 어떠하다’라고 이야기하면 한쪽은 레이어와 하이어라키 같은 의미들이 먼저 떠오르고 다른 한 쪽은 물리적 구조나 Z축 등과 관련한 의미가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이번 특강의 Depth는 의미면에 있어 후자를 따르고 있다.


Depth 2. 구분

“모든 3d는 2d에서 시작한다.” 특강 중에 전관중 교수가 한 말이다. 모든 산업디자인의 첫 시작은 스케치하고 전개도를 그린다. 당연하게도 대칭, 비례, 시선의 흐름 등 모든 조형 원리를 Depth를 고려하면서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말도 했다. ‘2d로 디자인이 끝나는 모든 간판은 3d다.’ 간판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디자이너 말고는 아무도 없다. 이 간극을, 시각 디자이너는 Depth에 대한 고려 없이 간판 디자인을 잘 해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시 암암리 배제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는 나를 평면전문가 산업 디자이너를 입체전문가로 계속 나눠 생각해오진 않았을까 또한 “그 부분은 전문가가 따로 있으니까 내가 맡을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건 반대로도 마찬가지고”라는 말로 서로 배제하며 각자의 전문영역을 구축하려는 의도는 정녕 없었을까? 시각 디자이너 전체로 일반화하지 않더라도, 나는 둘을 무의식적이지만 완벽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구분의 결과는 두 영역이 겹쳐지는 지대에 군사분계선을 형성하고 서로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두 명의 전문가가 반드시 협업하여 디자인해야하는 것들, 가령 시각장애인의 언어 ‘점자’. 점자도 타이포그래피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왜 이렇게 충격적으로 다가올까. 점자 생태계는 대부분의 글자디자이너에게 없는 영역 취급을 받더라도 과연 안녕할까. 전관중 교수는 ‘촉감 검토’라는 말을 했다. 시각장애인은 손으로 글을 읽기 때문에 ‘촉감 검토’야말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이 부분은 산업디자이너의 전문 영역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점자 디자인에 있어 모든 과정을 그들에게 떠넘길 수는 없다. 글자 디자이너와 편집 디자이너가 할 일이 그곳에 있다.


Depth 3. 교류

그는 또한 시각디자인 산업의 특징 하나를 꼬집는다. 산업디자이너는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다른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는 반면에 시각디자인은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고서도, ‘소스 제공’만으로 마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점이다.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대화가 필요 없는 디자이너에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대화와 협업을 통해서 ‘더 나음, 더 적절함’을 찾아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뜻이 아니라 내 디자인을 상대방에게 설득시키거나 상대방에게 명령을 제대로 내려야한다는 의미로써 강조되는 것이다. 우리는 양방향 적인 대화와 토론은 고사하고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그러면서 클라이언트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에 쉽게 불만을 느낀다. 전관중 교수는 특강 중 시각 디자인에 대해 말할 때면 ‘자기가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한다’ 며 자신을 낮췄다. 이제 공부를 한 지 얼마 안 되는 준 시각디자이너 학생들을 상대로 그가 산업 디자이너라는 특성 때문에 그렇게 조심스럽게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두 영역 사이에 더 잦은 교류와 대화가 필요하다. 이후 그는 산업디자인의 문제점도 하나 소개한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로 두 전공이 분리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점인데, 산업 디자이너는 조형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해서 결과물은 항상 기능만을 강조하게 된다는 점이다. 예로 칫솔 광고가 그렇다. 항상 칫솔모가 이를 어떻게 잘 닦는지를 강조하고 얼마나 멋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아예 배제한다고 말이다. 멋진 조형에 자신감을 보이는 제품들이 더 많아져야한다. 기능과 조형은 각 전공의 전문 분야로서 나뉘는 것이 아니고 모두에게 중요하다. 시각 디자이너에게 외면 받는 Depth에도 기능으로서의 Depth와 조형으로서의 Depth가 있다. 그리고 가장 취약한 조형으로서의 Depth는 두 전공 양쪽에서 자기 분야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모호한 느낌을 준다.


Depth 4. 공유

마지막으로 나는 이런 질문을 했다. “Depth를 인지했으면 뭐부터 해볼 수 있을까요?” 그러자 그는 “일단 3d 그래픽 툴을 하나 익히는 게 좋다.”고 대답해주며, 미대 입시 중인 조카가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원근법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3d 프로그램의 Depth 표현으로 원근법을 설명하자 바로 알아들었다는 경험 하나를 소개했다. 시각 디자인과 산업 디자인의 극적인 협동플레이. 마치 슬램덩크 서태웅과 강백호의 하이파이브 장면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마음한켠 찝찝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데, 혹시 그 이유는 그의 조카도 전공이 분리된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면 자유롭게 넘나들던 그 경계가 다시 또렷해질 것이라는 걸 짐작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평면의 Depth 표현 한계 때문에 종이 혹은 칠판에 그린 그림으로는 원근법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2d는 3d로, 3d는 2d로 받아들여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두 전공의 다른 경험, 각각 주로 사용하는 그래픽 툴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보여지는 2d(포토샵,일러스트)는 시각디자인, 3d(라이노, 캐드, 마야)는 산업디자인이라는 관습적인 은유가 시각 디자이너에게는 Depth를 인식할 필요가 없게 만들고 산업 디자이너에게는 조형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만든다. 전관중 교수의 특강은 2d와 3d, 시각 디자인과 산업 디자인의 경계에 놓여있는 바로 그것을 가리키고 있으며, 두 전공의 디자이너들이 Depth 의식을 공유하는 것에 진정한 대화와 협업의 가능성이 있다고 전언한다.


출처: 디담 담화게시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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